*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영화 <더 랍스터>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였는데 최근에서야 보게 되었다. 최근 왓챠를 다시 보기 시작하면서 어떤 영화를 볼까 둘러보다가 왓챠 추천 영화 목록에 있던 이 영화가 눈에 띄었다. 맞아 나 이 영화 보고 싶어 했었지! 하고 홀린 듯이 클릭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진짜 너무 재밌다. 이렇게 재밌는 영화 너무 오랜만이다.' 이런 생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면서, 너무 어둡지만은 않고, 실소를 자아내는 내용 속에 어두움이 숨겨져 있는 '블랙코미디' 장르의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더 랍스터>가 딱 그런 영화였다. 이런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보라고 추천드리고 싶다.
오직 커플만이 허용되는 세상. 커플이 아닌자는 사회에 나올 수 없다. 아내로부터 이혼당한 주인공은 커플 메이킹 호텔로 들어오게 된다.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는 입주자에게 45일간의 시간을 주고, 그동안 커플이 되지 못한 사람은 동물로 변하게 된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말도 안 되는 영화 속 세상에서 자꾸 우리 사회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개로 변한 자신의 형을 데리고 다니는 주인공. 동물이 된다면 무슨 동물로 변하고 싶냐는 물음에 주인공은 '랍스터'라고 대답한다. (랍스터가 100년이 넘게 살고, 무수히 번식한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호텔 안에서는 커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을 진행하는데, 마치 커플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죄인처럼 그려낸다. 커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싱글로 살아가는 일을 마치 지옥에 떨어지는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심지어 여자 직원이 방에 들어와 성적 흥분 상태를 만들고는 자위는 금지되어있다는 규칙을 알려준 채 방을 나가버리는 시간까지 있다. 자위를 하다가 걸리는 경우 손을 토스트기에 넣는 고문을 당하게 되고, 그 장면을 모두에게 보여줌으로써 성적 요구 해소를 위해서라도 커플이 되고픈 욕망이 들도록 만드는 것이다.
'살기 위해' 커플이 돼야 하는 이들은 호텔 내에 자신의 짝이 될만한 이성을 탐색한다.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와 짝이 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자해해 코피를 흘리게 만들던 남자는 그 여자와 커플이 되었다. 사이가 안 좋아질 때쯤이면 아이를 배정해준다. 아이 낳기를 강요하며, '부부는 아이 때문에 산다'라는 말을 하는 이들이 갑자기 떠오르는 건 나뿐만은 아니겠지.
주인공은 감정 없어보이는 비정한 여자와 짝이 되는 편이 좋겠다고 판단해 자신도 그런 식으로 행동해서 그 여자와 커플이 된다. 그러나 개가 된 자신의 형을 죽여버린 그 여자 앞에서 그는 이 짓은 도저히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호텔을 도망쳐 나온다. 호텔을 도망쳐 나온 사람들이 가는 곳은 외톨이들의 숲이다. 이곳에서는 숲의 바깥세상과는 반대로 커플이 죄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커플을 강요하는 세상에 질려 도망쳐 나온 주인공은 숲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것도 그녀가 눈이 근시라는 자신과의 공통점을 가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 숲에서 도망칠 궁리를 짜다가 들킨 그녀는 시력을 잃는 벌을 받게 된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녀와 함께 숲 속을 빠져나와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 주인공. 하지만 커플로 살아가려면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필요하다. 앞에 보이지 않는 그녀와의 공통점을 만들기 위해 레스토랑에서 나이프를 빌려 화장실로 들어가는 주인공. 자신의 눈을 찌를까 말까 망설이는 그와, 멍하니 앉아 그를 기다리는 그녀. 그렇게 영화는 끝난다. 과연 주인공은 자신의 눈을 찌를 수 있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 결국 그는 랍스터가 되었을까? 아니면 영화 첫 장면에 나오는 총 맞아 죽는 말이 주인공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 속 세상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이 계속 오버랩되었다. 어딜가도 꼭 남자 친구 있냐는 질문을 받고, 남자 친구가 있다고 하면 있지도 않은 결혼 계획에 대해 나는 대답을 해야 한다. 결혼 계획이 아직 없다고 하는 내가 이상한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결혼에 대해 아직 나는 자신이 없는 상황인데도 그런 분위기에 떠밀러 자연스레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
아직도 면접을 보면 결혼 계획을 물어보는 곳이 있고, 기혼의 경우 아이 계획을 물어보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있다. (이제 불법이라지만 누가 면접 보는 자리에서 '그거 물어보는 거 불법인데요?'하고 대답할 수 있을까.)
이성친구가 없거나, 나이가 어느정도 되었는데 결혼을 안 하면 '비정상' 취급을 받고, 나는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데 아이 낳을 생각이 없다고 말하면 그런 나를 이상한 사람처럼 바라보거나, 어차피 낳게 될 거라는 말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함부로 속단한다. 이 영화도 이러한 물음들 속에서 시작되었겠지.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결심하게 된다. 사회에 분위기에 떠밀려 내 인생을 규정하거나 만들려고 하지 말자.
내 인생은 한번 뿐인 내 것이고 너무 소중하니까.
'Review > mov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리뷰] '마이 원 앤 온리' 리뷰 (0) | 2020.08.27 |
---|---|
[영화리뷰] '월요일이 사라졌다' 리뷰 (0) | 2020.08.17 |
[영화리뷰] '이미테이션게임' 리뷰 (0) | 2020.08.09 |
[영화리뷰] 영화 '소공녀' 리뷰 (0) | 2020.08.08 |
[영화리뷰] '부산행' 그리고 '반도' (0) | 2020.08.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