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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dramas

[드라마리뷰] '부부의 세계' 마지막회를 보고

by 기록하는니나 2020. 5. 19.

평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인데, 최근 가장 화제의 중심에 있던 '부부의 세계'를 다 봤다. 처음에는 SNS에 돌아다니던 짧은 클립 영상들을 보고 너무 흥미가 당겨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람피운 남편에 대한 짜릿한 복수극! 얼마나 재미있을까. (는 내 착각...)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원작의 경우 두 시즌에 나눠 진행됐던 이야기를 16부작에 조금 압축시키다 보니, 그리고 영국 드라마가 원작이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초반부터 한국 드라마 답지 않게 엄청나게 빠른 전개로 진행됐다. 이런 사이다 전개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 시청자들은 당황했는지, 6화가 끝나고는 실시간 검색어에 '부부의 세계 몇 부작'이 올라올 정도였다. 그리고 아직 부부의 세계를 시작하지 않은 이가 있다면, 6화를 마지막화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하차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하하.

 

사실 부부의 세계가 처음에는 행복했던(또는 행복하게 보였던) 가정을 파탄낸 바람피운 남편에 대한 단순한 복수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밌어 보여서 시작했던 것인데, 6화에서 김희애가 보여줬던 복수 장면은 실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우린 모두 속았다.) 부부의 세계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위 사진에 나와있는 것처럼 빨간 실로 엮어진 듯한, 부부 사이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와 그 알 수 없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6화가 딱 지나고 7회부터 마지막회까지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속 온통 슬프고 답답한 감정으로 가득했다.

지선우, 민현서, 여다경, 고예림,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 네 여자들은 모두 어딘가 조금씩 닮아있다.

 

바람피운 남편에 대한 복수심, 자신을 둘러싼 자신을 속인 모두에 대한 증오심, 그 감정들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를 망가트려버린 지선우. 그 지긋지긋한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차라리 고산을 떠나버렸으면 어땠을까 하고 나는 내내 생각했다. 전남편과 자신을 둘러싼 주변에 대한 끓어오르는 증오감에도 불구하고 십수 년간의 세월 동안 쌓아온 감정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나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고 싶지 않아 했던 그녀의 고집은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증오감만큼 쌓아온 애정도 컸었기 때문이겠지. 

 

바람보다 더 이해할 수 없고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인 폭력. 거기다 물리적 힘으로 우위에 있는 남자가 여자를 때리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만큼 이해가 안되던 맞고 사는 여자. 지선우에게 도움을 받아 겨우 겨우 그 남자를 벗어나 도망치기 직전, 민 현서가 지선우에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도 저처럼 되지 말란 법 없잖아요.' 때리는 남자 친구를 벗어나기 힘들어했던 민현서의 모습에서 지선우도 본인이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음을 부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그렇게 도와주려고 했을 거고. 그 지옥에서 벗어난 끝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현서는 행복해졌길 바란다.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에서 제일 나쁜 년인 불륜녀 여다경. (너무 예뻐서 얼굴 보고 있다보면 나쁜 년인 거 잠깐 까먹...)

이 드라마의 유일한 교훈이라면 '한번 바람피운 남자는 두 번 피우게 되어있다.(무조건입니다. 100% 에요)' 

이태오가 지선우랑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사실대로 말하라고 이태오에게 종용하는 장면과, 지키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장면에서 내내 초반의 지선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 연출도 너무 좋았다.) 지선우와 다른 점이라면 여다경은 아니다 싶은 순간 칼같이 끊어낼 줄 알았다는 것. (물론 그 과정에서 지선우가 많이 도와줬지만. 여다경을 도와줬다기보단 이태오가 버림받기를 바랐던 거겠지...?) 

 

그리고 제일 답답했던 고예림. 여기서도 위의 교훈은 다시 한 번 적용할 수 있겠다.

'한번 바람피운 남자는 무조건 다시 피우게 되어있다.'

아기가 없어도 이혼이라는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걸 예림의 케이스에서 보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역시 바람피웠다는 걸 내 눈으로 보게 된 이상 함께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예림이 홀로서기에 성공한 장면이 나마 조금 위로가 되었던 장면이었다.

 

답답한 여자들 천지였던 이 드라마를 보며 비록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이란 무엇일까?' 

 

나는 평소에도 결혼이라는 것을 참 어렵고,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때는 나는 결혼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었다. 음, 이효리가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했던 말이 너무 공감됐었는데, '결혼 전에는 남자친구도 2년에 한 번씩 바뀌었는데, 내가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을까?', '내가 바람피우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됐다고. 실은 나도 그런 생각을 가끔 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뇌가 이성적으로 완전 차단이 돼서 다른 사람이 눈에 안 들어오는 게 아닐 텐데, 혹시라도 나나 상대방이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 말이다. 

결혼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하고 있는 요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결혼은 사랑보다 신뢰의 문제라는 것.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 나온 좋아하는 대사가 있는데 '사랑은 내가 이 사람을 얼마큼 사랑하느냐가 아닌, 이 사랑을 얼만큼 지키고 싶느냐의 문제'라는 대사이다. 이 말이 참 가슴에 깊게 남아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결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앞으로 새로운 이성과의 만남과 짧은 설렘은 포기한다는 것일 거고, 대신 결혼을 통해 얻는 내가 선택한 가족과 그에 따른 안정감과, 더 깊은 사랑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를 보자. 영원한 설렘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너무 어려운 드라마였지만, 결론은 제일 중요한 건 바람피우지 말자. 바람 안 피울 자신 없으면 결혼하지 마라.

그리고 애가 제일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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